고시원을 떠나며





1.기억

언제 고시원을 들어 왔는지는 기억이 안난다.
겨울을 두번 보냈던가? 여름을 두번 보냈던가?
처음에는 그렇게 오래동안 있을 줄 몰랐는데 일년은 넘었을 것 같다.


방이 너무나도 작아서, 처음에는 무척 낯 설었다.
기지개를 피면 말이 벽에 닿고, 두팔을 쫙 벌려도 벽에 닿을 까 말까한 두평남짓한 공간.
아주 큰 상자 같기도 했고, 감옥에 독방같기도 했고, 커다란 관 같기도 했다.
그리고 결국, 작은 둥지가 되어버렸다.

매장청소, 손님과 상사  뒤치닥거리 그리고 세세한 신경전, 인정받지 못하는 자질구래한 일들을
하고나면 유일하게 혼자 있는 이 공간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.

때론, 이렇게 작은 공간에 내 자신이 길들어져 버리는게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,
스트레칭을 하려고 해도 제대로 동작도 못할정도로 작고
음악은 크게 틀어놓고 듣는건 말 할 수도 없고
티비마저 모기소리만 하게하고 들어야 했지만 그리 나쁘진 않았다.

때론, 옆방의 침대의 삐걱거림이 귀에 거슬리기도 했고,
통화소리,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소리도 너무나 크게 들렸지만
이젠 오히려 이 좁은 공간에서 아무소리도 들리지않는다면, 적막하다면 그게 더 싫지 않을까
이상해서 못 견디지 않았을까
그래서,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그런 사람소리가 묘하게 안도감을 주었다.

2. 또 다른 고시원

하지만 다른 고시원에 적응하기란 또 다른 문제다.
회사가 이사를 가면서, 직장근처로 다시 알아보는데 시설이 지금 있던 곳 보다 조금만 낮아져도 들어가 사는게 상상이 안 됬다.
아마 이 고시원이 최대의 마지노선인것 같다.
최소한 천장은 높아야 되는 구나. 최소한 샤워실과 화장실 시설이 쓸만은 해야겠구나.그런것들...

학생도 아니고 이 나이에 어디가서 '고시원에서 살아요' 하는 건, 나는 별로 신경안쓰지만 그 말을 뱉은 순간
상대의 얼굴을 몇초간 안쓰러워 지다가 의아해 진다는 걸 경험한 후로는 '그냥 자취해요' 라고 하게 되었다.
'그냥 살만한대 왜 그럴까.' 싶지만 경험해 보지 않고 이미지만으로 생각한다면 아마 나도 그랬으리라고 본다.


3. 짐.

이렇게 조그만한 공간도 살림이라고 점점 불어났다. 책은 안 사려고 했는데도 제일 많이 불어났다.
그리고 옷. 자질구래한 샴푸니 바디크랜저니 하는 생필품들도 처음 왔을 때 보다 늘어났다.
당연한 일이겠지만.
두 팔벌려 가득 안게 되는 커다란 박스 한개와 그 박스 반만한  박스 한개.
이렇게 두 박스안에 나에게 딸린 물건들이 다들어 있고, 왠지 그걸 보고 있자니 너무 크다.
들어  올 때는 작은 캐리어와 배낭이었던것 같은데.
더 줄이고 싶다.

4. 아쉬움.

벌써 새벽 한시.
서울 한 복판에 살지도 몰랐다. 엄청 넓어 보였던 교보 문고가 동네 서점마냥 눈에 훤해지고, 관광명소인 인사동인 바로 옆 옆 길이에다 제일 맛있는 샌드위치를 파는 집을 알게 될지도 몰랐다. 게다가 그리워 질거라고 생각도 못했다.
벌써부터.

이상하게 멀리 이사하는 것도 아니고, 그저 버스타면 30분정도의 다른 구로 이사가는 것 뿐인데도 섭섭하다.
아무도 아는 사람없고 아무도 나를 그리워해주지도 않는데.
아마도 이 고시원을 나가면서 내 이십대 초반이 끝남을 나도모르는 사이에 느끼고 있지 않나 싶다.

손에 잡힌건 없고 꿈은 잃어버렸거나 놓아 버렸고 현실은 앞으로 칼날처럼 더 날카로워져 피부에 와 닿을 걸,
나도 모르는 사이에 느끼고 있어서 그렇지 않나 싶다.






by 한나 | 2008/05/19 01:05 | 짧은글 | 트랙백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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